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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노트, 책, 시계로 대체해 본 일상

memo노마드 2025. 6. 10. 07:00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시대지만, 문득 ‘손으로 쓰고, 넘기고, 확인하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하루 동안 스마트폰 대신 노트, 종이책, 손목시계를 사용해보기로 했다.디지털 없이 맞이한 일상은 의외로 새롭고, 불편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노트, 책, 시계로 대체해 본 일상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노트, 책, 시계로 대체해 본 일상

 

📓 디지털 메모 앱 대신 ‘노트’로 하루 기록하기

매일 아침 스마트폰 메모 앱을 켜서 일정과 해야 할 일을 정리하던 나. 하지만 이날은 단단한 표지가 있는 작은 노트를 들고 출근길에 올랐다. 처음엔 어색했다. 손가락은 화면을 터치하고 싶어 근질거렸고, 키보드가 없으니 속도가 느려 답답했다. 그러나 펜을 들고 한 글자씩 써내려가다 보니, 그 속도만큼 마음도 천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메모 앱은 편리하지만, 때로는 그 편리함이 생각의 깊이를 앗아간다. 우리는 내용을 쓰기보다 ‘입력’하고 있고, 정리하기보다 ‘기록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트는 그렇지 않았다. 계획을 쓰며 하루를 상상하게 되었고,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고, 회의 내용을 받아 적고, 업무 중간중간 생각나는 점을 스케치처럼 그려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건, 디지털 메모는 저장에 강하고, 아날로그 노트는 ‘사고를 정돈하는 데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루가 끝난 후 노트를 펼치고 필기한 흔적들을 다시 읽는 일은 디지털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정이었다. ‘내가 오늘 이렇게 많은 생각을 했고, 나를 정리했구나’라는 작고 단단한 성취감이 마음에 남았다. 느리지만 진심을 담는 행위, 그게 아날로그 노트가 가진 힘이었다.

 

📖 전자책 대신 종이책: 무게를 넘어선 몰입

전자책 단말기와 스마트폰으로 독서를 하던 내가, 서재에서 오래된 종이책 한 권을 꺼냈다. 무겁고 불편한 책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다시 페이지를 ‘넘기는’ 감각을 느껴보고 싶었다. 지하철 안에서 펼쳐든 책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향수처럼 다가왔다.

전자책은 간편하지만, 독서에 ‘잡음’이 많다. 알림이 울리고, 무심코 다른 앱을 열어버리고, 조명 밝기조차 몰입을 방해할 때가 있다. 반면 종이책은 방해받을 요소가 없었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는 리듬, 손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 책장 사이 은은한 잉크 냄새가 내 감각을 되살렸다.

놀라운 건 집중력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을 땐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생각이 들곤 했는데, 종이책을 읽을 땐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책 속 문장을 밑줄 긋고, 여백에 생각을 적는 행위는 글쓴이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그날 읽은 책은 평소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았고, 문장의 온도도 생생했다.

또한 책을 덮는 그 순간, 뭔가 중요한 걸 채운 듯한 포만감이 들었다. 단지 정보를 읽은 것이 아니라, 나와 대화를 나눈 느낌이었다. 아날로그 독서는 감각을 깨우고, 디지털 속 피로를 잠시나마 씻어주는 시간이었다.

 

⌚ 스마트폰 대신 손목시계: 시간을 바라보는 자세

시간 확인조차 스마트폰으로 하던 내가, 서랍 속 오래된 손목시계를 꺼냈다. 날짜는 엉뚱하게 맞춰져 있었고, 배터리도 교체해야 했다. 하지만 시계를 찼을 때 느껴지는 그 묵직한 감촉은 생각보다 의미 있었다.

스마트폰은 시간을 ‘집착하게’ 만든다. 수시로 화면을 켜고, 현재 시간만 보는 게 아니라 메시지, 일정, 알림까지 같이 본다. 결국 시간 확인은 ‘목적’이 아니라 ‘입구’가 되어버리고, 우리는 그 입구에서 수십 분을 잃는다.
반면 손목시계는 단 하나의 정보를 준다. 지금 몇 시인지. 그 단순함이 오히려 집중을 도왔다.

회의 중, 지하철에서, 업무 중간중간 시계를 보며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더 가까워졌다. 시계는 불필요한 자극 없이 나를 현재에 머물게 했다. 시침과 분침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면 오히려 시간이 흐르는 걸 ‘존중하게’ 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스마트폰은 시간을 쪼개고, 알림으로 조각낸다. 반면 아날로그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준다. 그 덕분에 나는 하루를 더 부드럽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시계가 알려주는 건 숫자가 아니라, ‘흐름’과 ‘여유’였다.

 

디지털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아날로그는 깊고 단단했다. 노트, 책, 시계를 통해 내가 얻은 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생각의 공간’이었다. 완전히 아날로그로 돌아갈 순 없지만, 가끔씩은 이런 시간들이 더 진짜 나를 만나게 해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