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글이 안 써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가설 하나. 혹시 스마트폰 때문은 아닐까? 하루만이라도 스마트폰 없이 지내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 궁금증에서 시작된 나의 작은 실험. 그 하루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걸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조용한 알림, 되살아난 집중력
평소엔 글을 쓰려 노트북 앞에 앉아도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문장을 고치다가도 어느새 손은 스마트폰으로 향하고, 알림을 확인하며 흐름이 끊기기 일쑤였다. 집중력의 연속성이 무너지고,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자꾸만 맥이 끊겼다. 글쓰기는 더딘 일이 되었고,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아예 꺼두고 책상 위에서 치워버리자, 처음으로 ‘정적’이 찾아왔다. 처음 30분은 불안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고, 손이 허전했다. 그러나 점차 그 정적 속에서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흩어지지 않고 모이기 시작했고, 흐름이 끊기지 않으니 한 문단을 자연스럽게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사라지자 내 글의 템포가 바뀌었다. 짧고 단절된 문장 대신, 하나의 주제에 몰입해 흐름 있게 전개할 수 있었다. 집중이 깊어지니 아이디어의 연결도 자연스러워졌다. 불필요한 자극 없이 나와 내 생각만을 마주하자, 그간 사라졌던 ‘글을 쓰고 싶은 욕구’도 다시 살아났다.
스마트폰이 주는 알림은 단지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고의 흐름을 끊는 칼’이었다. 하루 동안 그 칼을 내려놓고 나니, 나는 다시 나의 글로 이어진 선 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은 깊어지고, 문장은 자연스러워졌다
글쓰기는 단지 단어를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구조화하고 감정을 언어로 번역하는 고도의 인지 작업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의 사고 흐름은 매우 단편적이고 점프식이다. 짧은 영상, 빠른 피드, 단문 댓글에 익숙해진 뇌는 깊은 사유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보내며 글쓰기를 해보니, 놀랍게도 문장의 구조가 달라졌다. 글이 더 길어지고, 문단 간의 연결이 매끄러워졌으며, 전개 방식도 논리적으로 정돈되었다. 마치 잡생각이 정리되자 언어도 함께 정돈된 느낌이었다.
특히, 중간에 끼어들던 푸시 알림이나 메시지가 없으니 내 생각의 맥락이 유지되었다. 평소에는 문장을 쓰다가도 ‘이 문장은 괜찮은가?’ 같은 판단에 빠져 자주 멈췄지만, 이날은 그 판단 이전에 먼저 ‘완성’을 해보자는 집중이 가능했다. 덕분에 글의 초고가 완성되는 시간이 평소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평소보다 훨씬 감정이 잘 녹아들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생각한 내용을 글로 옮기니, 더 진솔하고 풍부한 표현이 나왔다. 이는 단지 ‘기술’로서의 글쓰기보다 ‘표현’으로서의 글쓰기에 가까웠다.
기억과 경험이 글의 재료가 되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우리는 정보를 빠르게 찾고, 쉽게 저장한다. 메모 앱에 적어두고, 캡처를 하고, 북마크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저장한 정보는 거의 다시 꺼내지 않는다. 반면, 직접 기억하고 경험한 것은 오래 남고, 글로도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보내며 나는 인터넷 검색 없이 글을 써야 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곧 뇌 한켠에 저장된 경험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지나간 여행, 인상 깊은 대화, 예전에 적어둔 노트의 한 문장들. 그 기억들은 스마트폰 없이도 살아있었고, 오히려 더 선명했다.
이날 나는 과거의 장면을 꺼내 글로 써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순 정보 위주의 글이 아니라, 나만의 언어와 감정이 담긴 글이 되었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빠른 정보’보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느린 기억’이 훨씬 더 좋은 글의 재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또한, 글을 쓰는 동안 눈이 피로하지 않았고, 머리가 복잡하지도 않았다. 스마트폰 없이 정보를 찾는 대신, 내 안에서 이야기를 끌어냈기에 마음마저 평온해졌다. 그 경험은 마치 고요한 저녁에 혼자 일기를 쓰는 감성처럼 따뜻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하루, 글쓰기는 다시 나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방해 없는 집중, 기억과 감정이 살아난 언어,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어쩌면 필요한 건 더 많은 앱이 아니라, 잠시 꺼내두는 용기일지도 모르겠다.